신빈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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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신씨

btn_1.png신빈 신씨(信嬪 辛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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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신씨 묘역

신빈(信嬪)은 태종대왕의 후궁(3부인)으로 본관이 영월(寧越)이며, 검교공조참의(檢校工曹參議) 신영귀(辛永貴)의 딸이다.

 

1414년 신녕옹주(信寧翁主)에 봉해졌고, 1422년 신녕옹주에서 신녕궁주(信寧宮主)로 봉해졌으며, 1872년에 신녕궁주에서 ‘신빈(信嬪)’에 봉해졌다.

태종대왕의 총애를 받으며 오랫동안 태종의 병간호를 하였으며, 원경왕후 승하 후에는 궁 안의 일을 주장하였다.

태종 승하 후에는 출가하여 태종의 명복을 빌고자 하였으며, 세종은 신빈이 문소전(文昭殿: 태조 및 신의왕후의 혼전(魂殿)) 불당에서 금(金)으로 『법화경(法華經)』을 쓰게 하였다고 한다.

 

신빈은 3남 7녀를 낳았는데, 3남은 함녕군(諴寧君), 온녕군(溫寧君), 근녕군(謹寧君)이고 7녀는 정신옹주(貞信翁主), 정정옹주(貞靜翁主), 숙정옹주(淑貞翁主), 소선옹주(昭善翁主), 숙경옹주(淑慶翁主), 숙근옹주(淑謹翁主)이다.

 

1435년(조선 세종 1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세종은 조상(弔喪)과 치제(致祭)를 내리고 관에서 장사(葬事)를 다스렸으며, 염(斂)에 쓸 의복을 하사하여 예를 다하고, 묘소 조성에 도움을 주었다.

 

신빈신씨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산41번지에 있다.

신빈신씨 묘역은 장대석으로 두 단을 나누고 위에는 8각 호석(護石)을 두른 봉분과 묘표(墓表)[1441년], 상석(床石)을 설치하였다.

아랫단에는 평면 형태 사각형의 장명등(長明燈)과 복두공복(幞頭公服) 차림에 홀을 든 형태의 문인석 한 쌍이 세워져 있다.

 

geunnyeonggun2_05b.jpg신빈신씨 묘표는 하엽수(荷葉首) 형태이며, 받침은 비신과 한 돌로 제작되어 복련(覆蓮)이 조각되어 있다. 묘표의 앞면에는 ‘신녕궁주신씨지묘(信寧宮主辛氏之墓)’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정통6년 신유 삼월(正統六年 辛酉 三月)’이라고 새겨져 있어서 정통(正統) 6년 신유년(辛酉年)[서기 1441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신빈신씨 장명등의 중대(中臺) 4면에 ‘신녕궁주(信寧宮主)’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